2015년 2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아버지하나님&패스티브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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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하나님 ]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 사람, 아담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아담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일까.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마지막 아담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다.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신단 말인가.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마지막 아담의 예언 그대로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재림 예수님은 과연 누구일까.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세례와침례&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세례와침례&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세례와 침례

세례나 침례는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에게 있어 신성한 예식이다. 신앙의 최종 목적인 구원으로 향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예식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세례는 죄를 물속에 씻는다는 의미고, 침례는 죄를 물속에 장례 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비기독교인들이야 두 예식의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상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예식들의 차이점을 교리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세례

1. 근거

세례(洗禮)의 한자는 씻을 세(洗), 예식 례(禮)다. 성경에서는 죄를 적은 양의 물로 씻어서 사했다는 세례식의 기록은 없다. 단지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세례 의식은 초기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시작해 소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로 전파되면서 생겨났다. 당시 무역이나 여행에서는 불가피하게 사막을 지나야 했고 물이 귀한 사막에서 복음을 들은 후 새 삶을 찾고자 예식을 행해야 하는 경우,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할 수 없어 물을 조금 뿌려 약식으로 행하는 세례식을 베풀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행해졌던 이 예식은 A.D. 120년경 많은 교회로 전파됐다.



2. 교단

세례식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 행해지고 있다.



3. 결론

세례식은 성경에 기인하고 있지 않다. 예식 자체가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의미 정도만 성경에 두고 행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있는 셈인 것이다. 세례식으로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방법으로 죄 사함을 구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죄 사함, 즉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에는 세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서의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다. 즉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하던 대로 강이나 호수의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침례

1. 근거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으로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침례를 행하게 하셨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3~17)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받은 침례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침례(浸禮)의 한자는 잠길 침(浸), 예식 례(禮)다.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다.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의미다. 간단하게 세례식을 행했다면 굳이 물에 내려가서 온몸을 적시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요단강 속으로 함께 내려가 침례식을 행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죄 사함의 의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5)



2. 교단

오늘날 침례를 행하는 교단에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있으며 그 외에도 침례교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여호와의증인 등이 있다.



3. 결론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구원의 표인 ‘침례’를 거론하고 있다. 침례는 온몸을 물에 적시거나 담그는 예식으로 반드시 ‘침수’가 원칙이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현 재무부 장관급인 내시에게 베풀었던 예식도 세례가 아닌 침례였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 (사도행전 8:35~39)



이 두 사람의 행위 속에서 침례라는 예식의 시급함을 짐작할 수 있지만, 고관대작으로서 조금 더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깨끗한 물 한 병으로 얼마든지 예식이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세례가 올바른 예식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침수’를 원칙으로 하는 침례식은 물 한 병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비록 하천에 흐르는 물이라도 온몸을 적셔야 하는 침례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깨끗한 옷 정도는 버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시의 결단을 보면서 천국을 향한 그의 믿음과 당시 행해졌던 죄 사함의 의식이 바로 침례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침례는 깨닫는 즉시 행해야 한다. 6개월이나 1년간의 학습 후 침례를 행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침례를 즉시 행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한 시간 후 또는 일 분 후에도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침례를 베푼 후에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 섬네일 출처: 니콜라 푸생 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22일 일요일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안식일)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안식일)
[안식일]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원석(原石)이었을 때는 돌덩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만일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갖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혹 갖게 되더라도 아무 데나 방치해 두었다가 누군가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기 쉽다. 무엇이든 가치를 알지 못하면 경홀히 여길 수밖에 없고, 결국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오직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도 이와 같다. 안식일은 단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있어 보배로운 날이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숭고한 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보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56:2)



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일과 ‘안식(安息)’이라는 단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시며 그날을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다. 이 말은 일곱째 날 자체가 복을 받고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날을 지키는 백성들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에스겔 20:12)



또한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대해 기술할 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반복적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 하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더 이상 이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6일 창조에 대한 예언이 6천년 구속사업에 대한 예언으로, 7일째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처럼 7천 년째부터는 더 이상 시간의 끝이 없는,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예언은 아직 다 성취되지 않았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베드로후서 3:8)”는 말씀과 같이 6일 창조의 역사는 6천 년간 이루시는 영적 창조, 즉 구원의 역사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은 7천 년째 당하는 안식 천년의 예언으로써, 구원받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하며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0:4~6, 22:5).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이 땅에서는 아무리 편히 쉰다고 해도 실상 쉬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 편안한 것도 잠시간일 뿐 그조차도 여전히 힘이 들기 때문이다(전도서 1:8, 2: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안식은 다르다. 사망도, 눈물도, 애통함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그야말로 ‘완전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이처럼 안식일은 엄청난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만 이 모든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약속은 아직도 효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씀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그 안식처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이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자기 일을 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히브리서 4:1~11, 현대인의성경)



구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신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세상 끝 날까지 지키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20).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때, 안식일의 가치를 깨달아 굳이 잡고 있었던 인생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매주 일곱째 날마다 이 보배를 우리에게 값없이 나누어주고 계신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어떤초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패스티브닷컴)

어떤초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패스티브닷컴)


[어머니 하나님]
어떤 초대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마태복음 22:1~1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는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떤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요한계시록 19:7~9)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있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요한계시록 21:9~10)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라디아서4:26)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는가.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2~23)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즉 아담은 오실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세기 3:20)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이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ㅁ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22:17)


성경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생명과를 가지고 오신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아버지하나님)

생명과를 가지고 오신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아버지하나님)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당연히 사람으로도 오실 수 있습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유월절을 알려주신 재림예수님이십니다.



마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고 창세부터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부터 감춰진 비밀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창세의 역사가 기록된 책은 창세기 입니다.

지금부터 창세기에 감추어진 비밀들 중에서 생명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시고 생명과와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금령을 내리셨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잘 아시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꼬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류는 죽음의 고통에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창3:22~2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는 아담과 하와가 이미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이후입니다.
죄인들이라도 생명과만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생명과를 먹을 수 없도록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만약 죄인들이 먹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생명과를 다시 허락하실 분이 있다면 그 분은 누구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하나님이 아닌 그 누가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에덴동산의 생명과는 비유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생명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요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누구든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면 영생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생명과를 먹어야 영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비유로 되어 있는 에덴동산 생명과의 실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요??


마26:17~19, 26~28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떡은 내 몸 곧 예수님의 살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 포도주는 나의 피 곧 예수님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은 6장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생명과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예식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가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방법이 바로 유월절인 것입니다.



에덴에서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은 생명과를 다시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인류를 살리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생명과를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성도)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생명을 주시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에덴의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인생들은 생명과를 먹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명과를 먹는 방법은 유월절 진리입니다.
이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을 세워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생명나무의 길을 열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가지고 오신 생명과의 진리가 유월절 입니다.

그런데... 325년 니케아 회의를 통해 이 귀한 유월절 진리를 폐지해 버렸습니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이 없으면 어찌 우리가 구원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이 땅에 오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막힌 생명나무의 길을 열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으므로 초림 때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두 번째 나타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번째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면 에덴의 생명과가 필요합니다.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유월절 진리 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오실 때에는 반드시 유월절을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오늘날 이런 귀한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안상홍님이십니다.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오실 수 있습니다.

안상홍님은 우리에게 생명과의 길을 다시 열어주신 하나님 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교회에서 믿고 있는 안상홍님께서만 유월절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 얻으시기를 소원합니다.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예수님의 메시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패스티브닷컴)

예수님의 메시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패스티브닷컴)

예수님의 메시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주 인용하거나 암송하는 성경구절 중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로마서 10:17).
공동번역에는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NIV 영어성경에는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로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번역하여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메시지를 들음으로써 생기는 것이고, 그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듣는 것이라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불어넣는 각종 메시지를 누구한테서 받고 있을까요? 설마 '우리 목사님'이나 일개 '교단'의 메시지는 아니길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메시지만이 아무런 점도 흠도 없을 것이며 진정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을 통해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메시지나 음성메시지를 직접 보거나 읽거나 듣고 깨달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욥기 8:11)


왕골이나 갈대는 진펄이나 습지에서 왕성하게 자랍니다.
물기가 없는 곳에서는 왕골이나 갈대를 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벼나 미나리도 물기가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양들이 좋아하는 것은 목자가 주는 향긋한 풀입니다.
이리의 몸에서는 비릿한 고기냄새만 날 뿐입니다.
우리 영혼도 생명수, 즉 하나님의 말씀을 흡수하지 않고는 결코 소성함을 얻을 수 없고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후에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은 어디에서 생길까요?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믿기만 하면 될까요?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그의 아내가 주시는 생명수를 받아야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아내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어머니입니다.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우리 영혼의 목자이시며 성령과 신부이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로부터 생명수를 공급받아야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며, 영생복락을 약속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인천과 부천서 헌당기념예배

하나님의교회, 인천과 부천서 헌당기념예배


 인천시 서구 심곡동에 위치한 인천심곡 하나님의 교회 전정. 
교회 입구에 건물 높이의 구조물을 조성해 웅장한 느낌을 준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인천과 경기도 부천에 새 성전을 짓고, 지난 7일 각각 헌당기념예배를 가졌다.
인천심곡 하나님의교회는 연면적 2474㎡, 지하2층, 지상 3층 규모다. 
700석 규모의 대예배실과 교육관 등 2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교회 입구에 건물 높이의 구조물을 세워 웅장한 느낌을 준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설립한 부천송내 하나님의교회 전경.
6층 규모로 예배실과 교육관, 식당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부천송내 하나님의 교회는 연면적 2400㎡,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다.
도보로 10분거리에 경인선 전철 송내역이 있으며, 주변에 부인초등학교와 서천공원이 자리잡고 있어 쾌적하다.

이날 안식일 예배와 겸해 이뤄진 헌당기념예배에서 김주철 목사는 "좋은 성전을 가진 만큼 많은 이웃들을 구원과 천국으로 인도하는 교회의 사명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 교회는 설립기념으로 '우리 어머니전'을 개최해 지역주민들을 초청했으며, 봉사활동, 교회 화장실 개방등으로 지역사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부천송내 하나님의교회의 헌당기념예배 모습(왼쪽)과 설교하는 김주철 목사.


한편, 하나님의교회는 올해도 설을 앞두고 전국 교회에서 독거노인과 청소년가장 등 저소득계층에 생필품과 식료품을 지원하고 이미용 봉사와 경로위안잔치를 펼치는 등 대규모 봉사에 나서고 있다.


출처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2781371

2015년 2월 8일 일요일

생명수를 받으라(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패스티브닷컴)

[어머니 하나님]
생명수를 받으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체는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물의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며 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물을 두고 생명 그 자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우리 영혼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영혼의 생명인 영생도 생명수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없다면 우리 영혼도 심한 갈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생명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아모스8:11~13)


우리 영혼에 필요한 생명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인 생명수를 구하지만 얻을 수 없어 
영혼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생명수는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생명수를 주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22:17)


요한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섬이라는 곳에서 계시를 받았다.
천사가 보여준 미래에 대한 일들 속에서 그는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령은 성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시다.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에 이 시대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 옆에서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떤 존재일까.
생명수를 베푸시는 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생명수를 받을 수 없기에 '신부'에 대한 문제만큼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도 요한도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요한계시록 21:9~10)


요한은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낡은 성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인 예루살렘은 누구인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성령 혼자만이 아닌 성령과 신부께서 함께 생명수를 주신다는 것은 이 시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수를 받기 위해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어야 함을 뜻한다.  이와 함께 구약시대 많은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인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8)


실지로 어떤 건물에서 물이 솟아난다면 큰 문제다.
아마도 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스가랴 선지자는 생명수가 예루살렘성에서 솟아나 동서로 흐를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는 실지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생명수가 사시사철 쉼없이 흘러 넘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명수는 더욱 그 양이 많아져 동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흐를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에스겔 47:1~5)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멀리 흘러갈수록 무릎, 허리까지 차 올라 나중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이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지만 마침내는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생명수라야 전 세계로 흘러간다. 
세상의 다른 유명한 신학자나 성경 연구가가 아닌 오직 하늘 어머니라야 가능한 예언이다.


강 좌우 가에는 작종 먹을 시로가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시로가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니라 (에스겔 47:12)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 넘친 생명수는 결국 강이 되고 그 강 좌우에는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진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요한계시록 22:1~5)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난다고 예언한 반면,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도 성령의 신부 되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어린양의 보좌'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예레미야 3:17)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좌, 즉 어린양의 보좌가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어린양의 보좌'는 '하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는 생명강이 예루살렘에서 흘러 넘치는 모습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기록한 요한의 계시와 같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쳐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수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자들만이 하늘나라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라도 생명수를 받지 못한다면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심한 갈증을 느끼는 이 시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말씀하고 계신다.
"오라!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5일 목요일

[경인일보 종교특집]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인터뷰





[종교특집]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 인터뷰

더불어 사는 세상 어머니 마음이... 정답입니다.




자녀 위해 끊임없이
나눠주고 베풀어주고
희생,사랑이 어머니 본성
세상 평화롭게 만들어

세월호 사고 다 수습안돼
해수부 장관 표창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와 더불어 침몰한 우리 사회의 양심을 건져 올린 이들은 사고 직후부터 현장에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있었다.

하나님의교회 자원봉사자들은 진도 팽목항, 실내체육관 현장에 무료급식캠프를 설치, 44일간 밤낮 없이 따뜻한 밥을 짓고 죽과 국을 끓여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제공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해 실내체육관 넓은 바닥을 구석구석 걸레질 했다.

묵언의 진정성에 실종자가족과 다른 자원봉사자들, 언론이 주목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하나님의 교회측에 표창장으로 감사를 표했다. 

통칭 '하나님의 교회'로 불리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1964년 설립, 지난해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만에 세계 175개국에 2천500여 교회를 설립하며 등록성도가 2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2013년 교회 추산)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하나님의교회의 세상을 향한 봉사가 성장의 큰 지렛대였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지켰던 안식일, 유월절 같은 예배일을 그대로 지키고 아버지 하나님뿐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믿는다.

또 재해 복구, 국제대회 자원봉사, 환경정화, 농촌 일손돕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정성 있고 헌신적인 봉사로 정부 훈장, 표창, 미 대통령 자원봉사상과 캄보디아 국왕 훈장, 필리핀, 몽골, 페루 정부 장관표창등을 비롯하여 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상을 받으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세계적 규모의 봉사와 거침없는 성장세. 그 비결은 무엇이고 이 교회가 말하는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총회장 김주철 목사를 만나 물어봤다. ┃편집자 주



-최근 하나님의교회가 해수부장관표창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실종가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 곁에서 한마음으로 봉사하신 전남지역 성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4월 21일부터 5월 9일까지, 8월 13일부터 9월 19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른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정성스러운 어머니 손길로 식사를 준비하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어요. 그래도 아직 사고가 다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라 마냥 기쁘지만은 않네요. 한솥밥을 먹었으니 다들 우리 식구, 우리 가족 아니겠습니까. 세월호 유가족들도 슬픔을 함께 나누는 또 하나의 가족이 곁에 있따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표창은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이 꼭 상을 주고 싶다고 해서 사임 전에 행정처리를 마쳐놓았다고 한다.)


-하나님의교회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벌인 의미있는 봉사활동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봉사 자체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있나요.

"성경에 우리를 하나님의 씨로 여기셨다는 표현이 있어요. 씨는 자라나면 본래 식물을 닮아가고 열매를 맺는 성질이 있지요. 고난과 인내, 선행과 봉사 등은 그리스도의 속성입니다. 죄로 죽어가는 인류가 불쌍해서 이 땅에 친히 육체로 오셨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선을 행하시고 봉사하시면서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죄 사함과 영생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씨로서 우리도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눈을 갖고, 낮추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해야죠."



-하나님의교회에서 믿는 '어머니 하나님' 신앙이 궁금합니다.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경을 근간으로 합니다. 성경이야말로 영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책이니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은 '엘로힘'이라는 복수형 표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약 2500회 기록된 '엘로힘'은 신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유일신인 하나님이 왜 성경에 '하나님들'이라는 복수형으로 표기되었느냐는 거죠. 그 답은 1장 26절과 27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거든요. 복사기를 생각해보면 아시겠지만 복사본에 남자, 여자 모습이 있다면 원본에도 남자, 여자 모습이 있지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류가 남자, 여자라면 하나님 형상에 남자 형상도 있고 여자 형상도 있다는 얘깁니다. 남자 형상의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가 '아버지 하나님'으로 불러왔어요. 그렇다면 여자 형상의 하나님은요?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도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바로 어머니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의교회가 전국 곳곳에서 개최한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 교회 성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공감을 자아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처음엔 서울 강남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바쁘고 각박한 사회에서 요금 사람들이 부모님을 돌아본다거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는 것 같아서, 메마른 심령 속에 어머니를 일깨움으로써 사랑을 환기하고 그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주시는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려 기획했습니다. 그게 직장인, 주부, 학계, 언론 할 것 없이 큰 호응을 얻어서 전시를 전국으로 확대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어요. 그래서 6개 광역시로, 지방 중소도시로, 또 대도시는 구 단위로 계속 순회 전시를 하게 됐죠."


-어머니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대목이 신선하네요.

"어머니는 가정에서 온갖 일을 다 합니다. 자녀를 위해 끊임없이 나눠주고 배려하고 베풀어주고, 당신은 어렵고 힘들어도 자녀만큼은 잘되게 하려는 희생과 사랑이 어머니의 본성입니다. 어머니만큼 훌륭한 봉사자는 없을 겁니다. 요즘은 자기만 알고,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욕심을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사회적으로 큰 병폐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쉽게 욱하고, 타인을 존중하기보다 그 위에 군림하려 하고, 타인의 안전보다 자기 욕심이 우선이고, 그로 인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요. 어머니 마음은 그렇지 않죠. 다 주고도 더 못 줘서 아쉬워하고, 자식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 힘들고 위험한 건 생각지 않아요. 그런 어머니 마음이 생명을 살리고, 마음에 위로를 주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듭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교회가 급성장했죠? 교세 확장에 그런 진정성이 한몫한 것 같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요.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성경의 진리를 지키고 성경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니 하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선한 본을 보여주시고 선한 가르침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요. 하나님을 본받은 성도들이 이웃의 아픔을 볼 때마다 한마음으로 화합해서 봉사를 자청했기 때문에 진실한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인일보
http://www.kyeong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939212

2015년 2월 3일 화요일

파주시, 하나님의교회 환경정화활동 실시

파주시, 하나님의 교회 환경정화활동 실시



[이뉴스투데이 경인지역본부 신윤철 기자]
지난 25일 세계복음선교협회 제2파주 하나님의교회(당회장 권영철)는 
목회자 및 성도 11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파주시 금촌1동 금촌역 고가하부,
명동로, 문화로, 새꽃로, 금촌재래시장 주변에서 쓰레기 줍기 및 
도로 정화활동을 실시하였다.

유동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각종 쓰레기 투기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금촌 시내의 청결을 위해 앞으로도 하나님의교회는 정기적으로 정화
활동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나님의교회 관계자는 "우리의 손길로 깨끗한 파주 만들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하나님의교회는 매월 전국에서 일제히 지구환경정화활동을
2676회차 실시하고 있으며 이웃돕기 등 주민들로부터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_이뉴스투데이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4612

2015년 2월 1일 일요일

십자가는 우상숭배입니다.(하나님의교회)

십자가는 우상숭배입니다.(하나님의교회)

예수님 시대에 십자가는 죄수를 못 박아 죽이는 사형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십자가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된 때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 시대부터입니다.
그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끔찍하게 처형하는데 사용했던 십자가를 '부끄러움(히2:2)','저주받은 나무(갈3:13)'로 여겼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교회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세속화된 교회와 지도자들이 
이교도들을 더 많이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이교에서 숭배하던 십자가 형상을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못 박히신 거룩한 상으로 미화한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A.D431년에 최초로 교회 안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A.D568년에 교회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이교도들의 숭배사상에서 기인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무형상도 만들어 섬기지말라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숭배하지 않습니다.